“현구님, 어드민 페이지에 메모 기능 추가하는 거 어려워요?”

몇 달 전 저녁 회식 자리였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을 보며 얼을 타던 나에게 사업 담당자님께서 넌지시 질문을 던지셨다. 정신을 차리고 바라본 담당자님의 얼굴엔 ‘그리 어려운 게 아닐 텐데 왜 추가해주지 않느냐’는 표정이 그려져 있었다. 이미 몇 번이고 이유를 설명했었지만, 답답함이 가시지 않으셨는지 술자리에서까지 질문을 하신다.

“저희도 원하시는 기능 추가해드리고 싶고 추가해드리는게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하나라도 더 자동화해드리려고 메모 기능을 안 해드리려고 해요. 메모에 적히는 내용이 많으면 많을수록 정규화가 어려워서요.”

구구절절 설명 드렸지만, 여전히 탐탁지 않아 하는 표정. 죄송할 게 아님을 알지만 죄송한 마음이 피어오른다. 그래도 언젠가는 큰 그림을 이해해주시리라는 기대를 품으며 삼겹살을 집는다. 괜스레 잔을 내밀며 대화 주제를 바꾸려 해본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만 개발해주면 그만일 텐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이게 저희 서비스가 추구하는 방향과 일치하는 건가요?”

지난겨울, 외부 업체 미팅을 다녀오신 기획자님께서 외부 업체가 제안한 아이디어를 전달하셨을 때 경수님의 답변이셨다. 시터들의 경력을 개월 단위 대신 연 단위로 분류하자는 아이디어였는데, 경력 많은 시터 확보가 어렵다는 문제를 덮어놓기 좋은 아이디어였다. (경력 1개월의 시터도 1년 차 시터로 분류됨) ‘옳다구나~’ 하며 아이디어를 수용할 수도 있었을 텐데, 경수님은 개발을 넘어 사업이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부터 보고 계셨다. 결국 하루 만에 해당 아이디어는 철회되었다. 경력 많은 시터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하는 것으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주인의식을 갖고 개발해야겠다는, 정말 많은 자극을 받은 이벤트였다.

“현구님 이거는 사업팀 분들이 신청자 목록 엑셀 파일을 넘겨주시면 한꺼번에 모아서 백오피스에 등록해드리면 돼요. 매일 한 번씩 돌아가는 배치를 만들면 될 거 같아요.”

“음… 사업팀 분들이 엑셀에 수기로 작성하시는 거라면 백오피스에 신청자 등록 기능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사업팀 분들도 저희한테 신청하실 필요 없고, 저희도 배치 신경 쓸 필요 없고…”

“오 그렇지!”

그날 이후 전달되는 태스크를 곧이곧대로 개발하지 않고, 사업 전반에 걸쳐 한 번씩 더 고민해보면서 개발을 진행했다. 어디에 쓰이고, 어떻게 쓰일 것인지. 꼭 이렇게 만들어야만 하는지.

“사업 운영팀 분들이 축구장만 한 크기의 땅을 파내야 하는데, 지금 손으로 파내고 계셔요. 정말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사업을 키워오셨거든요. 저희가 굴삭기를 만들어 드려야 해요.”

PO님의 말씀처럼 굴삭기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혹여나 모종삽을 만드는 건 아닐까 끊임없이 의심하고 조바심을 내며 더 잘된 제품을 만들려고 욕심을 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제품을 드리고 싶었다.

“이게 자동화되면 매니저분들께서 신경 쓰실 필요가 없게 돼요.”

“수동으로 체크해야 부모님들을 더 잘 신경 써드릴 수 있잖아요.”

굴삭기를 만드는 과정이 꼭 순탄치만은 않았다. 비효율의 숙달화. 이미 몇 년 동안 운영해온 프로세스에 매몰되어 자동화를 불필요하게 여기셨다. 이미 몇 년 동안 잘 써온 나무 모종삽이 있으니, 굴삭기 대신 철제 모종삽을 만들어달라 하셨다. ‘나무 모종삽보단 철제 모종삽이 효율적이긴 하니까…’ 자칫 착각하기 쉬웠다. 혼란스러웠다.

그럼에도 경수님께선 운영팀의 이야기에 맞서며 꿋꿋하게 굴삭기를 준비하셨다. 그런 경수님을 따라 나도 정신을 붙잡고 굴삭기를 만들어 나갔다. 운영팀 분들이 요청사항을 주시면 ‘왜 이런 요청을 하셨을까?’, ‘이게 왜 필요한 걸까?’ 두세 번씩 곱씹으며 정말 필요한 태스크로 정리했다. 버튼 한 번이라도 누르는 것도, 페이지 한번 이동하는 것도 최소화하면서 자동화를 시켜나갔다. 결국 그렇게 완성된 굴삭기 시운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만족해하시는 운영팀 분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현구님, 그런데 얼마 전에 이야기했던 메모 기능 기억나세요? 그거 아직도 힘들까요?”

경수님이 떠나시면서 넘겨주신 백로그 작업들을 사업 담당자님과 정리한 직후였다. ‘여전히 모종삽을 원하시는 걸까?’ 생각하며 대답드리려던 찰나, 내가 사업팀 분들을 괴롭히고 있는 건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운영 프로세스를 개선해서 더 편하게 해린다는 내 욕심에, 당장 불편하게 해드린 건 아닐까? 굴삭기를 만들어드리고 싶다는 내 욕심에, 당장 정말 필요한 모종삽을 쥐어드리지 못한 게 아닐까?

어물쩍 어물쩍 드린 답변 속에는 한없이 작아진 내 모습이 비춰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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