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테크코스 레벨1 글쓰기 미션 - 우아한테크코스 한 달 생활기 로 작성했던 글이다! 한 달간 생활하면서 깨달은 소프트스킬의 중요성에 대해 소설처럼 풀어내고자 했다.


🍚 밥부터 먹고 할까요?

무아지경(無我之境)이라는 사자성어를 좋아한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들리지 않고, 시야가 노트북 모니터 정도로 좁아진다. 배가 고프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은 체 손가락과 눈동자만 빠르게 움직인다. 집중력이 극도로 높아지는 무아지경 상태에선 3시간 걸릴 일을 1시간에 끝내는 기적을 만들어낸다.

페어 프로그래밍은 무아지경을 방해하는 족쇄였다. 주변 소리에 둔감해지려 하면 페어의 목소리가 들렸고, 시야가 좁아지려 하면 서서히 배가 고픈 게 느껴졌다. 처음 보는 사람과 나란히 앉아 무아지경에 빠진다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옆 사람이 신경 쓰이는 데 어떻게 온전히 집중하지?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결국, 집중을 포기하고 밥부터 먹자는 결론에 다다른다.

“밥부터 먹고 할까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는 페어. 마스크에 가려 잘 보이진 않지만, 눈을 보니 웃고 있는 것 같다. 이 사람도 어색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겠지. 하지만 해방감도 잠시, 엘리베이터 앞에 줄을 서면 다시 어색한 정적이 흐른다. 엘리베이터 층수만 멍하니 바라보는 크루, 괜히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확인하는 크루, 메뉴는 뭐가 좋을지, 식당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는 크루. 다들 어색한 분위기를 의식하지 않기 위해 애써 노력하고 있다. 식당에 도착해서 QR코드를 찍기 전까지 가벼운 대화만 오간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다 정적에 못 이겨 질문을 주고받기 시작한다. 어쩌다 우아한테크코스에 지원하게 됐는지, 지원하기 전엔 무얼 했는지, 지금은 무얼 꿈꾸고 있는지. 이야기를 듣다 보면 페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그려지기 시작한다. 블로그를 오랫동안 운영해왔구나. 막혔을 땐 새벽까지 안 자고 개발을 하는구나. 어느새 대화에 안정감이 생기고, 고개를 끄덕이며 페어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밥을 다 먹고 커피를 뽑을 때쯤 되니 페어뿐만 아니라 페어 주변도 알게 된다. 그 사람은 일단 구현하고 리팩토링을 탄탄하게 하는 스타일이구나. 데일리 조에서 재밌는 걸 해봤구나. 나도 다음 데일리마스터 때 써먹어 봐야지. 14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은 내려갈 때와 사뭇 분위기가 달라져 있다.

자리로 돌아와 모니터에 쓰인 미션 제한사항을 읽으니 여전히 막막하다. 그래도 배가 불러서일까? 오전보단 한결 나은 거 같다. 기지개를 켜던 페어가 갑자기 키보드를 잡고 README 파일을 작성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놀라지 않았다. 밥 먹으면서 나눈 대화로 이 사람이 얼마나 적극적인지 파악했다. 키보드를 잡은 지 벌써 20분이 지나 슬슬 역할을 교체할까 싶지만 기다려본다. 이번 메서드를 완성할 때까지만 양보해야지. 어? 이름 리스트인데 names가 아니고 name? 이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이름 리스트는 복수니까 names 어때요?”

페어와 점심을 먹으며 나눈 이야기들은 페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갑자기 알 수 없는 코드를 작성해도 천천히 기다릴 수 있다. 우선 코드부터 짜보는 사람이니까. 약속한 시간을 넘겨서 키보드를 잡고 있어도 양보할 수 있다. 매사에 적극적인 사람이니까. 나와 네이밍 스타일이 다른 건… 페어 끝나고 바꾸기로 마음먹고 쿨하게 넘긴다. 어느새 페어와 무아지경에 빠져 미션을 진행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제야 포비의 말이 떠오른다.

“페어를 만나면 미션부터 진행하지 마세요. 최소 20분은 대화를 나눠보세요. 밥이라도 한 끼 같이 먹고 시작하세요. 안 그러면 싸움 납니다.”

밥을 먹으면서 나눈 대화는 생각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면, 그 사람의 갑작스러운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까? 차례를 양보하지 않고 할 일만 하는 걸 기다릴 수 있을까? 서로 다른 네이밍 스타일을 쿨하게 넘길 수 있을까? 개발자는 많은 사람들과 팀을 이루고 협업을 하는 직업이다. 사람 대 사람으로 정부터 붙이지 않는다면 분명 큰 화를 겪게 될 수밖에 없겠지. 코치들이 말씀하신 소프트 스킬이 바로 이런 거구나 생각하게 된다.

우아한테크코스 한 달 생활동안 깨달은 마법의 주문이다.

“밥부터 먹고 할까요?”

주문을 외친 순간부터 페어와 함께 무아지경에 빠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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