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정신없이 다녔던 학교를 드디어 졸업하고,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개발해서 잠시나마 서비스로 운영도 해보고, 생각지도 못한 좋은 회사에 취업했다.
개발자란 무엇인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고민도 많았고 학부 4년 내내 컴퓨터공학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내 취향에 맞는 진로가 어떤 것인지 고민이 많아 인턴 활동도 여러 차례 했었다. 그렇게 돌고 돌아 선택한 백엔드가 우연히 취향에 맞았다. 운도 참 좋다.
올 한 해를 한 줄로 요약하면 어떻게 말 할 수 있을까. ‘3번의 끝과 2번의 새로운 시작’? 이정도로 요약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될거같다.
첫 번째 끝 - 졸업
2015년 3월 입학, 2021년 2월 졸업. 칼 같이 졸업했다.
4년간 배우고 경험한건 정말 많은 거 같은데, 그것들 중 올 한 해 써먹은 건 몇 가지 없는 거 같다. 다행히 그 몇 가지들이 굉장히 중요하고 요긴하게 잘 쓰였다.
운영체제 수업에서 배운 리눅스 메모리 관련 지식은 테코톡 발표에 쓰였고, 프로젝트에 푹 빠져서 몇 날 며칠 도서관에 박혀있던 경험은 우테코 미션 내내 써먹었다. 가장 중요한 건 같은 전공, 관심사를 가진 또래들과 모여서 함께 웃고 떠들고 술도 한잔하고… 그런 시간들이었다.
졸업작품 팀 프로젝트가 끝나고 1년도 더 지난 지금, 머리 속에 남아있는 건 기술 스택이 아닌 팀원들과 소주 한 잔에 시답잖은 이야기로 킬킬거리던 순간들이다. 그걸 매번 상기하다 보니 우테코 크루들과도 마찰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던 거 같다.
포트폴리오 특강 시간에 “불필요한 경험은 없다.” 비스무리한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그 말 그대로 생각지도 못했던 경험들이 많은 도움을 주는거 같다.
첫 번째 시작과 두 번째 끝 - 우아한테크코스
작년 하반기 취업시즌, 시장에서 원하는 스킬과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이 현저하게 다름을 깨달으면서 공부가 더 필요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학부 4년 내내 과제(프로젝트)에 짓눌린 후의 나는 시키는 것만 할 줄 알지, 능동적으로 필요한 걸 찾고 공부할 줄은 모르는 백지 바보 상태였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고민할 때 우연히 읽게된 캡틴의 아들과 함께 프로그래밍하기. 글을 읽고 한참을 빠져들 때쯤 우아한테크코스도 함께 발견하게 됐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스킬들을 능동적으로 진단하고 공부하는 방법,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위축되지 않고 나 자신과 경쟁하여 성장하는 방법을 배우고 훌륭한 코치님들, 열정 넘치는 크루들과 함께 행복한 한 해를 보냈다. 전공서적 하나를 살 때도 ‘언제 다 읽겠어…’ 하면서 겁먹곤 했는데, 이제는 ‘언젠간 다 읽겠지!’ 라는 생각으로 덜컥 사버린다. 참 많이 변하게 해준 고마운 시간들이다.
레벨1 때는 미션에만 치중해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미션이 끝나고 나면 페어였던 크루와 기억이 남는게 없어서 많이 아쉬웠다. 그래서 레벨2부터는 최대한 많이 이야기하고, 밥도 먹고, 술도 먹고… 미션은 뒷전으로 미루고 일단 페어와 놀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따금 ‘페어가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다행히 에어와 와이비도 그 기억이 좋았는지 나를 가장 인상적이었던 크루로 뽑아주곤 했다. 역시 남는건 사람인가보다.
레벨3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최대한 좋은 기억을 많이 남기려고 했던거 같다. 결국 남는건 사람이니 회의가 진행될 때도 최대한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처음엔 그런 걸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중에서는 어느 정도 먹혀들었던거 같다. 벌써부터 팀 프로젝트에 사용했던 기술들이 머리 속에서 흐려진다. 그래도 피자집, 족발집에서 팀원들과 웃고 떠들던 시간들은 뭉게뭉게 떠오르면서 미소가 지어진다.
수료 이후에도 마음 맞는 크루들과 뜨문뜨문 모여서 술 한 잔씩 하곤 한다. 앞으로도 쭉 그럴거 같다.
세 번째 끝과 두 번째 시작 - 취업
11월엔 쟁쟁한 스타트업들이 참가하는 리쿠르팅 데이가 열렸다. 여러 기업 관계자분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도메인의 시장성이나 기업의 비전, 방향성 등을 많이 살펴보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회사와 사람들의 분위기를 많이 보았는데, ‘결국엔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라는 생각이 여기에도 녹아들었던거 같다.
그 때 가장 좋은 인상을 심어주셨던 분이 맘편한세상의 CTO로 계시는 손현태님. 맘편한세상 서비스 도메인이 가지는 시장성과 한계에 대해 질문을 드렸을 때 가장 간결하고 명확하고, 무엇보다 따듯하게 답변을 해주셨다. ‘이런 분이랑 일하면 일할 맛 나겠다.’ 라는 생각이 거의 유일하게 들었다. 같이 설명을 들었던 조앤도 가장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나중에 현태님이 우아한형제들과 카카오를 거쳐 맘편한세상에 합류하신 걸 알게 됐을 땐 ‘와… 우형이랑 카카오엔 이런 분들만 있는건가? 진짜 가고 싶다…’ 라는 생각도 하곤 했다. 🤣
안타깝게도 그런 우아한형제들에는 낙방했다. 올 해 첫 면접이기도 했고, 평소 빈약한 암기능력 때문에 경험과 기록에만 의존하던 습관이 기술면접에서 발목을 붙잡았다. 고작 30분만에 한 해의 노력이 평가되었다는 억울함도 있었지만, 회사와 면접관 입장으로 생각해보면 그런 평가를 진행할 수 밖에 없는거 같다. 크루들에게 낙방 소식이 전해질 때면 “엥?? 구막이?? 왜??” 라는 반응들이었는데, 이게 의외로 정말 많은 위안이 되었다. 올 한 해 열심히 살았다는 걸 크루들이 대변해주는 느낌…😊 좋게 생각하자면 우형 낙방 덕분에 이후 기술 면접은 더 열심히 준비하게 됐다.
그와 동시에 떠나가는 사람이 생겼다. 여러모로 멘탈 관리가 어려운 시기였다. 정말 많이 힘들고 쓸쓸했지만 무너져 있으면 안될 시기였던지라… 동네 친구들이나 크루들을 만나서 술도 자주 마시고, 브라운께 면담도 받고(항상 감사합니다 브라운🙇♂️), 다른 회사들 과제나 면접준비에 집중하면서 최대한 잊고 지내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던 중 현태님이 계시는 맘편한세상에서 가장 먼저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기술면접에서 코드리뷰(사실 셀프부검)도 하고 기술적 이야기도 주고 받고, 임원면접에서는 나조차도 잊고 지내던 어린시절을 다시 더듬고 이야기하면서 정말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덕분에 자존감도 많이 올라서 당락과 관계없이 참 따듯하고 감사하다고 생각했는데, 최종합격 소식까지 들을 수 있었다.
워낙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셨던터라, ‘과연 다른 회사들은 어떨까?’ 라는 궁금증이 피어났다. 다른 회사들의 채용과정도 경험해보고 싶다는 이야기와 함께 오퍼수락 기간 연장을 문의드렸고, 정말 감사하게도 마음껏 경험해보고 오라고 답변을 주셨다. 덕분에 마음 편히 다른 채용과정을 체험해보면서 각 회사들이 갖고 있는 분위기나 기대하는 기술스택, ‘내가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까?’ 등을 고민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결국엔 맘편한세상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기술적으로 Node -> Spring 전환을 이제 막 시작해서 우아한테크코스에서 배운걸 곧바로 활용할 수 있다는게 재밌어보였고, 정지예 대표님이 유튜브 EO채널에서 보여주신 모습 덕분에 도메인과 서비스에 대한 확신도 가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현태님의 개인 블로그나 카카오 기술 블로그를 훔쳐(?)보면서 현태님이 그리시는 개발 문화를 상상해보았을 때, ‘이런 분과 함께 일하면 잘 성장할 수 있겠다.’ 라는 기대가 피어난 점이 가장 컸다.
또, 회사의 일원으로 존중받는 느낌을 정말 강하게 주시는 곳 같다. 최종합격 메일에 흘려들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내 이야기를 기억하고 적어주신 것, 오퍼확인 회신을 보내자마자 감사하다는 전화를 주신 것(깜짝 놀라서 제가 더 감사하다고 급하게 대답함…) 등이 정말정말 마음에 와닿았다.
기술면접에서부터 지금까지 참 따듯한 곳이다. 출근 날이 기다려진다.
2022년 계획
빠르게 적응하기
작년 이맘 쯤 준호님의 2019년 회고를 읽으면서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다.
나도 처음 팀에 합류하게 되면 분명히 마이너스겠지. 최대한 빠르게 적응해서 플러스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많이 보고, 많이 질문하고, 많이 움직이자. 부지런히 살자!
클라이밍 시작하기
20살 때부터 문뜩 클라이밍에 꽂혀 있었고 항상 ‘언젠가는 해봐야지…‘를 마음 속에 품고 있었다. 그러다 올해 마침 해볼 기회가 있었는데 당일에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터져서 클라이밍을 포기했다.
음… 이제는 돈도 벌기 시작할테니 꼭 해봐야지. 술도 좀 줄이고…
독립하기
중학교 버스 왕복 1시간, 고등학교 지하철 왕복 1시간, 대학교 지하철 왕복 2시간, 우테코 버스 왕복 2시간. 거기에 회사 출근 시간을 측정해보니 지하철로 왕복 3시간정도가 나온다.
대학생 땐 새벽까지 도서관에 남아있지 못하고 막차를 타야하는게 아쉬웠고, 우테코 땐 하루 2시간이 버스에서 버려지는게 너무 아까웠다. ‘이 시간들을 아끼면 뭐 하나라도 더 할텐데…’ 라는 욕망을 몇 년간 정말 많이 키워온거 같다. 월세로 나가면 돈 모으기 어렵다고들 만류하지만 한 달 60시간을 돈주고 살 수 있다면 어느 정도는 지불할 의사가 있다.
당장은 해결해야할 것들이 남아서 봄이 올 때쯤 다시 고민 해봐야겠다.
마무리
올 한 해 개발과 공부가 힘들지 않았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럭저럭 소화할만 했던거 같다. 오히려 한참 미션에 빠져들다가 학부생때의 즐거운 기억도 다시 되찾곤 했다. 다행히 개발자가 몸에 맞나보다. 우아한테크코스 과정이 개발자로서의 삶 체험판이었다고 생각해보면, 앞으로도 썩 나쁘지 않을거 같다.
지난 가을, 다 깨져가는 플라스틱 컵을 몇 년째 사용하는 모습을 본 동생이 “오빠는 자기 할 일 외에 주변에 너무 관심이 없다.” 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물건 뿐만 아니라 사람한테까지 그랬었나보다. 그 사람이 떠나가고, 다 깨져가는 플라스틱 컵도 버렸다.
내년에는 주변을 좀 둘러보면서 살아야겠다.
플라스틱 컵도 새로 하나 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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