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기술과 수 없이 많은 서비스가 우리 곁에 놓여진 세상이다. 이제는 누구나 쉽게 제품을 만들 수 있고, 누구나 쉽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기업은 자신들의 제품을 자랑하고 싶어 하고, 엔지니어들은 자신들의 기술력을 뽐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뛰어난 제품, 기술력과 부단한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선택 받은 기업, 엔지니어를 제외하곤 시장에서 별다른 관심을 갖지 못한다.
그들이 노하우가 부족한 걸까? 아니면 소비자들이 그들의 제품을 알아봐주지 못한걸까? 무엇이 문제인지 곰곰히 고민을 해보고, 다른 분들의 조언을 듣고, 여러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지었다.
output 과 outcome
용어를 두 개 정리하겠다. output 과 outcome 이다.
- output: ‘무엇을 만들었는가’, ‘어떤 산출물이 나왔는가’
- outcome: ‘어떤 가치가 형성되었는가’, ‘어떤 변화가 생겼는가’
대부분의 엔지니어들은 ‘어떤 기술’을 사용하여 ‘무엇(output)을 만들었는가’ 에 집중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엔지니어는 기술을 통해 무언가를 생산하는 것으로 직업적 가치를 인정 받기 때문이다. 기술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져, 가끔은 무얼 위해 만드는지를 망각한 체 주화입마에 빠지기 쉽다.
실제로 이전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간단한 예시를 들어보자. 회사 교육관련 부서에서는 매번 수강생들의 정보를 엑셀 스프레드 시트에 수동 기입해 모아둔 뒤, 특정 기간마다 기간마다 백엔드 개발자에게 시트를 전달하여 데이터베이스에 업로드 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이 스프레드 시트 파일의 크기가 점차 커져서, 한번 업로드를 시도할 때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업로드 중간에 에러가 발생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한다는 문제가 존재했다.
여기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엔지니어라면, 아마도 아래와 같은 방법들을 떠올릴 것이다.
- 엑셀 스프레드 시트 업로드 최적화로 속도 개선
- 엑셀 스프레드 시트 업로드시 중간지점 저장. 에러 발생시 중간지점부터 재시작
그러나 이 방법들은 엔지니어가 원하는 산출물(output) 일뿐, 교육 부서의 업무 방식에는 별다른 변화를 주지 못한다.
당시 우리 팀은 엉뚱하게도 다음과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꼭 매번 엑셀 스프레드 시트를 전달 받아서 업로드 해야하나요? 그냥 어드민 페이지를 만들어서 수강생 정보를 직접 입력해서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도록 할까요?”
이 방법은 엑셀 스프레드 시트 업로드 최적화나 중간지점 저장과 같은 기술적인 방식으로 멋지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육 부서는 매번 엑셀 스프레드 시트에 수기로 정보를 입력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졌고, 입력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추가 자동화도 가능하게 되었다. 엔지니어들은 더 이상 시트를 데이터베이스에 업로드할 필요도 없어졌다. 업로드 최적화나 중간지점 저장과 같은 기술적인 문제 해결도 덤으로 사라졌다.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교육 부서와 엔지니어들에게 변화(outcome)가 발생한 것이다.
결국 ‘어떤 기술’을 사용하여 ‘무엇(output)을 만들었는가’ 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해 ‘누구’에게 ‘어떤 가치’가 전달되었고 ‘어떤 변화(outcome)’가 일어났는가 이다.
기술은 변화를 만드는 수 만가지의 방법 중 하나 일뿐, 꼭 기술이 아니더라도 가치를 전달하고 변화를 이끌어낼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시작은 뛰어난 기술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야 한다.
현재 취업시장에서 인문학에 비해 이공계학이 더 중요한 평가를 받고, 많은 학생들이 이공계학을 선택하고 있다. 빠른 속도로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공계학이 중요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분명 어떠한 제품을 만들어낼 땐 뛰어난 기술이 필요하고, 그것이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중요한 건 제품의 가치가 아니라 사용자에게 전달되는 가치와 변화이다. 결국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콘솔 게임 시장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흔히 “콘솔 게임은 뛰어난 그래픽과 기술력으로 사용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목적” 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콘솔 게임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열악한 하드웨어 성능을 지닌 닌텐도 스위치이다. 스위치는 플레이스테이션, XBOX 에 비해 뛰어난 그래픽이나 기술력을 지니지 못한다.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프레임 드랍을 겪는 것도 예삿 일이다. 닌텐도는 어떻게 시장을 지배할 수 있었을까?
압도적인 비주얼, 엄청난 스케일, 대단한 하드웨어 성능… 닌텐도는 이런 대단한 기술들보다는 오랜시간 잘 다져온 IP(사용자들의 추억), 스토리, 창의력, 가족과 함께 즐기는 놀이로서의 인식 등 사용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요소에 집중했다. 닌텐도는 ‘어떤 기술’을 사용해 ‘무엇을 만들었는가’ 보다, ‘어떤 가치’를 전달하고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는지에 집중했기 때문에 시장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지배했다.
사실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하고 간단한 이야기이다. 불편, 니즈라는 것은 모두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피어난다. 우선 니즈가 시작되고, 비즈니스가 실행되어야, 그 뒤를 해결 방법들이 따르기 시작한다. 뛰어난 기술은 단지 수 많은 해결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기술이 아닌 감정, 감성이다. 때문에 엔지니어도 인문학을 절대 소홀리 해서는 안되겠다. 사람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없다.
엔지니어는 어떤 방식으로 변화(outcome)를 인지해야 할까?
변화를 인지한다는 것은, 당연하게도 ‘이전 상태’를 알고 현재와 비교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제품을 만들기 앞서 현재 현상이 어떠한가를 인지하고, 그것을 문제로 정의 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가 명확하게 정의되면 자연스럽게 문제를 해결을 시도(제품 개발)할 수 있고, 문제가 잘 해결되었는지 관찰 할 수 있다. 가치가 잘 전달되고 변화가 나타났는지 인지할 수 있다!
‘이전 상태’를 인지하기 위해선 단순히 기술 뿐만 아니라 사업, 마케팅, 디자인, 사용자 경험 등 다양한 영역에 대한 이해와 관심 필요하다. 우리 사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우리가 만들어낸 제품이 사용자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하는지,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는지 인지하기 어렵다.
끊임없이 사업에 관심을 갖고, 미리미리 예측되는 파트에 데이터를 수집한다. 데이터를 통해 사용자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문제를 정의하자. 그리고 그 때 비로소 해결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해결 방법은 기술이 아닐 수도 있다.)
문제 해결 후 데이터를 통해 변화(outcome)를 확인하는 것도 잊지 말자. 사용자들에게 가치가 잘 전달되었는지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 인문학적 이해가 있어야 데이터의 의미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
생각 정리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3H4umWD5bwI
현 네이버 COO(전 배달의민족 CEO) 김범준님의 유튜브 영상 속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개발자라고 한다면 스스로를 코딩하는 사람으로 정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국은 우리한테 주어진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때로는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정책을 바꾸고 프로그래밍을 안하는 것일 수도 있거든요.”
“우리가 풀고자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
“이게 제대로 되면, 오히려 문제 해결 방법은 잘 따라온다.”
우리는 정말 진중하게 사회적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기 위해 고민을 해보았을까?
정말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 시장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고, “우리 제품 이렇게 대단한데? 마케팅만 잘 한다면 분명 소비자들이 알아봐 줄거야.” 라며 자신들이 만들고 싶은 것, 자신들이 말하고 싶은 것만 이야기 하고 있었던건 아닐까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겠다.
정말로 세상을 뒤흔들고 싶다면, 어떤 기술로 어떤 기능을 만들어낼지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자. 100권의 기술 서적도 좋지만, 1권 정도는 인문학 서적을 섞어 보는 것을 잊지 말자.
댓글남기기